혼자 '덕후 책' 만들어서 얼마나 버냐고요? 먹고 살 만큼!

조회수 2021. 05. 03. 14: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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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이지 않은 것, 다수보다는 소수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모아 출판물로 펴내는 것이 업(業)인 남자가 있다. 독립출판 레이블 더쿠(The Kooh) 편집장 고성배 씨다. 주로 미스터리나 ‘덕질’ 관련 주제를 다루고 잡지도 비정기적으로 내고 있다. 


1인 독립출판이다 보니 잡지 및 단행본 출간에 드는 비용은 주로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다. 최근 결과물은 조선시대에 유행하던 사주법을 바탕으로 만든 ‘조선점술서’다.

출처: 빅이슈 코리아

고 씨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덕집장’이라 부른다. 덕후 편집장이라는 뜻이다. 만화, 게임, 역사 등 한 분야에 마니아급으로 빠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음차한 말이 덕후(오덕후)다. 취미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경멸적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취미를 즐길 줄 아는 사람, 특정 분야에 깊은 애정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생겨났다.

2014년 처음 ‘The Kooh’ 매거진을 내놓으셨는데, 매번 주제가 달랐잖아요. 중2병, 만화, 혼자놀기 등등 특이한 주제를 다루면서 “딱 10호까지 만들고 이 잡지는 폐간”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요즘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나요.


매거진 The Kooh는 현재 9호까지 발간됐어요. 최근호 주제는 제 백수시절 생활을 바탕으로 제작한 ‘백수의 권’ 인데요. 일단 다음에 나올 10호가 폐간호라고 보시면 돼요(굳이 10호까지만 만들기로 한 이유는 덕후 잡지를 5권 모으면 오덕후, 10권 다 모으면 십덕후가 완성되기 때문이라고). 시즌2를 만들지는 고민 중입니다.


요즘 하는 프로젝트는 조선점술서가 있고요. 조선시대 별자리를 다룬 ‘조선천문도감’이나 SF와 공포영화 속 장치들을 모은 ‘기믹스’, 만화 속 요리를 실제로 만들어보는 ‘만화요리책’등도 있습니다. 현재 13권 정도 단행본이 제작됐어요.


원래 직장인이셨다가 독립출판을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회사 다니실 때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원래는 건축사무소에 다녔어요. 전공이 건축이기도 했고요. 실제로 제가 설계에 참여했던 건물들이 수원이나 세종시, 브루나이에도 지어졌어요. 그러다가 카피라이터, 에디터로 이직을 했고 지금은 독립출판 하면서 콘텐츠 제작에만 매진하고 있습니다.


회사생활을 그만하고 다른 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직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분야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드신 건데 고민은 없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직원으로서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변해가는 회사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 맞추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죠. 반은 객기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현재는 회사를 다니지 않고 있네요. 


무언가를 도전할때에는 조금 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자꾸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만나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출처: 텀블벅 '조선점술서' 펀딩 페이지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혼자 글 쓰고 책 만들어서 얼마나 돈이 벌릴까 싶지만 고 씨는 꾸준히 “먹고 살 만큼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점술, 수십 년 전 기록물처럼 흔치 않은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덕후 감성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은근히 있기 때문이다. 최근 펀딩 마감된 ‘조선점술서’ 후원금액은 4500만 원이 넘는다. 2620명의 후원자가 후원금을 내고 책을 받아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어떤 책을 만들지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면서 자료 수집하는 과정이 오래 걸려요. 막상 기획이 결정되면 그 다음부터는 빠르게 움직이는 편입니다. 모아 놓은 자료와 원고를 가지고 3~4개월 정도 공들여 책을 만들어요. 그 다음에는 텀블벅 펀딩, 독립출판 입고 등으로 유통합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인세를 받는 일반적 출판과 달리 1인 독립출판은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유통, 마케팅까지 혼자 다 해야 하기에 힘들지만 뿌듯함도 있다. 기성출판물에서 보기 힘든 소재로 제작할 수 있다는 것도 독립출판의 매력이라고.

출처: 빅이슈 코리아

혼자서 모든 걸 다 하시는 게 만능인 같아서 멋지기는 한데, ‘워라밸’ 추구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일과 삶을 분리하는 편인지, 굳이 구분하지 않고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스스로 가진 에너지를 적당히 조절하면서 출판에 힘을 쏟는 편이에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라는 게, 계속해서 어떤 아웃풋(결과물)을 뽑아내는 일인데… 뽑아 내기만 하고 들어가는 인풋이 없으면 힘들거든요. 인풋은 주로 휴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영화를 본다거나 누워서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든가 여행을 간다든가. 적당히 스케줄 조절하며 그 둘을 배합하는 게 저에게는 중요하더라고요.


개성 존중, 취향 존중 시대가 되면서 덕후라는 단어의 이미지도 점점 달라지고 있는데요. 2021년 현재 편집장님의 ‘덕후관’은 어떤가요.


이제는 덕후라는 말이 서브컬처 마니아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아요. 부정적인 시선도 많이 사라진 것 같고요. 저도 이제는 어디 가서 덕후라고 말하려 합니다(덕후 이미지가 안 좋았던 시절, 고 씨는 인터뷰할 때 일부러 “나는 덕후가 아니다”라고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말하는 덕집장이 되려고요.


다음 프로젝트로 생각 중인 내용이 있으시다면 살짝 힌트 좀 주세요.


생각하고 있는 주제는 몇 개가 있어요. 이미 작업 진행 중인데, 힌트를 드리자면 ‘조선점술서’와 유사한 책이라고 말씀드릴게요.


5년 뒤 본인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역시 새로운 책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땐 더쿠문고 단행본이 30권 정도 시리즈가 생겼을 것 같고요. 여전히 인디자인을 켜고 남들이 관심 없어하는 것을 찾아 페이지에 담고 있겠죠. 그렇게 만든 책을 누군가가 사주고 읽고 좋아해주고. 그렇지 않을까 해요.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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