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도 잘 몰랐어요" 꽃가루 알레르기 책 낸 이비인후과 의사

조회수 2021. 05. 07. 11: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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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 흡입·접촉 시 비염, 결막염, 가려움증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꽃가루 알레르기’는 봄철에 흔한 질환이다. 하지만 이 꽃가루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식물이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분포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중의 식물도감 서적은 대체로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식물 종류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물들만 다루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히는 꽃들, 무엇일까?

‘나를 괴롭히는 꽃’이라는 부제가 달린 ‘꽃가루 알레르기 도감’은 현직 이비인후과 의사가 펴낸 책이다. 경희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부터 개원의로 일하는 서정혁 씨는 의학적 임상 경험에 식물에 대한 기본 지식, 직접 촬영한 150여 종의 식물 사진을 더해 책을 완성했다.

전문의들도 꽃가루 알레르기 유발 식물에 대해 잘 모른다니 의외였어요.

“의과대학에서 알레르기 유발 식물에 관해 배우지 않는 데다, 따로 공부하고 싶어도 관련 책이 거의 없어요.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식물은 대체로 바람에 꽃가루가 날리는 풍매화이다 보니 꽃받침이 없거나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예쁘게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그것이 책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서 씨는 20여 년 동안 개원의로 일하면서 줄곧 알레르기 검사를 해 왔고, 항원 검사 키트에 우리가 익히 아는 식물도 있었지만 피나무, 딱총나무, 물푸레나무, 오리새, 왕포아풀, 명아주처럼 낯선 이름도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검사 결과가 나오면 환자에게 이런 식물들은 어디에 주로 분포하는지, 꽃가루는 언제 많이 날리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줄 수 없어 스스로 궁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식물들에 대해 궁금할 때도 많았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그래서 직접 책을 쓰기로 결심하신 건가요.


“처음부터 책을 내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꽃가루 알레르기 유발 식물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서, 야간에 배우는 대학이 있으면 식물학과에 다녀야겠다는 생각만 했죠.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가 고교 동창 모임인 사진동호회에서 카메라 작동 요령을 익히고, 평소 잘 모르던 새와 식물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동안 궁금하던 알레르기 유발 식물과 꽃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아파트 화단의 식물들을 담다 집 근처 식물원으로 매일 아침 출근했고, 그 자료가 몇 년간 쌓이면서 도감을 만들 정도가 됐지요.”


알레르기 유발 식물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보통 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할 때 꽃가루 검사 항원이 25~30여 종인데 그동안 전부 식물 이름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알레르기 검사에서 항원은 식물 분류 체계에서 가장 말단인 ‘종(species)’이 아니라 ‘속(genus)’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항목 항원이 식물 1종인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자작나무 항원은 ‘birch’로 표기되는데 여기서 ‘birch’는 단순히 자작나무가 아니라 자작나무속에 해당하는 자작나무, 박달나무, 물박달나무, 사스래나무, 거제수나무 등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참나무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참나무가 아닌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속 식물을 다 포함하는 항원으로 봐야 했던 것이죠.


또 너도밤나무라고 하면 당연히 밤나무의 한 종류로 생각할 수 있지만 외양이 비슷해 붙은 이름일 뿐, 실제로는 다른 식물입니다. 그래서 식물의 계통 분류를 하면서 서로 연관된 식물도 정리하다 보니 150여 종까지 늘어났는데… 아직도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자와 동료 의사들에게 도움 되길

우리나라 산림의 40%를 차지하는 참나뭇과 참나무속에는 신갈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번호순)가 포함된다. [꽃가루 알레르기 도감]

꽃가루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가장 흔한 식물은 무엇인가요.


“식물의 분포가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나라는 참나무 종류가 산림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많고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해 알레르기 항원성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꽃가루가 날리는 양으로 보면 소나무 화분이 많고 잡초 중에는 쑥, 환삼덩굴, 돼지풀 등이 비교적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알레르기 항원성도 높다고 합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꽃가루 알레르기 유발 식물에 대해 이름만 들었지 관련 지식이 없다 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어디에 가야 볼 수 있는지를 몰랐고, 어렵게 찾아가도 정확히 어떤 생김새를 가진 것이 해당 식물인지 알기도 어려웠죠. 또 개화기가 보통 일주일 남짓이라 비라도 와 그 시기를 놓치면 이듬해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책을 쓰는 입장에서 정확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요. 잡초나 목초의 경우 동정(생물 분류학상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예를 들어 쑥 종류가 우리나라에만 30종이 넘는데 비슷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성장기에는 그 모습이 다양하게 변하거든요. 방법은 확인, 또 확인 뿐이었고 최종적으로는 국립세종수목원에 부탁해 감수를 받았습니다.”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의학적으로는 현대 사회가 도시화, 산업화되면서 우리 몸에서 염증성 질환에 관여하는 면역세포보다 알레르기에 관여하는 면역세포가 더 많이 활성화된다는 ‘위생가설’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거기에 미세먼지와 황사 같은 환경오염이 호흡기 점막을 약하게 해 알레르기 증세를 더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약 알레르기가 의심된다면 가볍게 넘기지 말고 원인을 파악한 후 조기에 치료받아야 합니다. 방치하면 호흡기 점막에 염증을 일으켜 2차 세균 감염의 원인이 돼 축농증, 기관지염, 폐렴 등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서정혁 씨는 책이 환자는 물론 동료 의사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지호영 기자]

서정혁 씨는 20년간 운영하던 병원을 정리하고 안식년 개념으로 휴식시간을 갖고 있다. 덕분에 책을 쓰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할 시간도 가졌다. 그는 ‘꽃가루 알레르기 도감’이 환자뿐 아니라 동료 의사들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책을 준비하다 보니 우리나라 자체 알레르기 검사 항원을 개발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어요. 나라마다 식물 분포가 다른데, 지금 사용되는 검사 키트는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라 우리나라만의 특성이 반영되지 못 했다는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조만간 다시 진료 현장으로 돌아가겠지만 우리나라 식물 분포에 맞는 알레르기 검사 항목을 찾고 선별하는 노력도 계속 할 예정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나를 유혹하는 꽃’을 테마로 식물도감을 내고 싶기도 해요.”


주간동아 1287호 발췌 /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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