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 신작이 호불호 갈린 결정적 이유

조회수 2021. 05. 0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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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Those Who Wish Me Dead, 2021)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몬태나주의 엘리트 공수 소방대원인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세 명의 아이를 눈앞에서 구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에 빠져 있었다.

타인 앞에서는 담대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죄책감에 뭉그러진 상태였던 것.

'한나'는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며 위안을 얻었는데, 일부러 위험한 '패러글라이딩'을 시도하기도 하고, 삼림 한복판에 쓸쓸히 서 있는 화재감시탑에 홀로 유폐되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온몸에 피를 묻힌 채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듯 겁먹은 소년 '코너'(핀 리틀)를 만난다.

'코너'는 법의학 회계사로 일하다 예기치 않게 위험에 빠진 아버지 '오웬'(제이크 웨버)과 함께 이 곳으로 피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인청부업자 '잭'(에이단 길렌)과 파트너 '패트릭'(니콜라스 홀트)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홀로 도망쳐 나온 것.

'오웬'은 죽기 전 '코너'에게 거대 범죄의 증거를 전달했고, 이를 믿을 수 있는 이에게만 건네라고 이야기했다.

'한나'는 '코너'를 통해 자신이 지키지 못한 아이를 계속해서 떠올렸다.

어쩌면 세상과 벽을 쌓고 있던 '한나'에게 '코너'는 꼭 필요했던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잭'과 '패트릭'에게 명령을 하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아서'(타일러 페리)는 무슨 짓을 해서든 '코너'가 지닌 정보를 입수하라고 명령한다.

임무를 완수하고 비밀을 지킬 수 있다면 많은 이들을 죽이든 상관없다는 '제로섬 게임'을 지시한다.

그렇게 '잭'과 '패트릭'은 작은 마을의 관심을 한 쪽으로 돌리기 위해 자신들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산불을 내고, '오웬'의 매형인 부보안관 '이든'(존 번탈)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엔 '이든'의 아내이자, 임산부인 '앨리슨'(메디나 생고르)만이 있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테일러 쉐리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 하나로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배우로도 활동 중인 그는 <시카리오> 시리즈, <로스트 인 더스트>(2016년)로 뛰어난 각본가임을 입증했고, 직접 각본과 연출을 동시에 맡은 <윈드 리버>(2016년)를 통해선 자신만의 길을 발견한 '작가주의 감독'임을 선언했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현재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현실감 있게 전달하고 싶었고, 장르로는 '네오 웨스턴'을 표방했다.

멕시코와의 국경 지대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꺼내면서, 동시에 여성 캐릭터를 성적 대상화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강인하면서도, 동시에 내부에선 자신의 갈등을 삭히는 캐릭터를 집필해나갔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년)에선 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에게, <윈드 리버>에선 신입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에게, 그리고 이번 작품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선 '한나'에게 그런 캐릭터를 부여했다.

'한나'를 맡은 안젤리나 졸리에게 너무나도 어울리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생존과 성장, 비극적인 과거를 극복해 구원을 찾고자 하는 여성의 서사는, 과거 안젤리나 졸리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던 <처음 만나는 자유>(1999년) 이후 꾸준히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특이할 점이 하나 더 있다.

보통 할리우드의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임산부는 무자비한 킬러나, 살인마에 의해 죽음의 대상으로 사용됐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이를 비틀어 보여주기까지 했다.(덕분에 킬러들의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워지긴 했다)

한편,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자신의 인장을 다시 한 번 영화에 집어넣었다.

일례로, '오웬'의 "'루이스'와 '클라크'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라는 대사는, 감독이 <윈드 리버>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의 연장 선상처럼 느껴졌다.

미국을 횡단한 두 탐험가의 발자취는 곧 아메리카 원주민이 학살당하는 길이 됐기 때문.
단순히 컴퓨터 그래픽에 산불을 맡기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제작진이 작품 촬영을 위해 뉴멕시코 사막 300에이커에 나무를 심고 불을 지르고, 안젤리나 졸리가 20m 높이의 소방 감시탑에서 뛰어내리는 와이어 액션을 직접 소화하는 등 볼거리만큼은 할리우드 제작 스릴러답게 충분한 작품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테일러 쉐리던 감독이 '메인'으로 각본을 쓰지 않았기 때문인지, 좀 더 대중적으로 관객에게 접근하고 싶어서였는지, 기존 그의 작품에 비해 다소 헐거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예를 들어, 두 청부살인업자의 행동은 초·중반부만 하더라도 깔끔하게 연결됐지만, 정작 산불을 내고 난 이후부터는 그만큼의 대처 능력을 잃고 만다.

게다가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버리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에 대한 물음표도 생겨버린다(서두에 언급한 트라우마를 앓던 여성이 정신적으로 극복한다는 서사로 완결이 날 순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의 뛰어난 극작술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다소 평범해 보이는 영화라 당황했을 수도 있겠다.

이 영화가 호불호가 갈렸다면, 이것은 그의 뛰어났던 전작과 '다른 전략'을 선택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다른 감독의 작품이었다면, 이런 이야기는 없었을지도)

2021/05/04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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