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위해 만든 '면 생리대'로 창업, 처음엔 신고 당할 뻔"

조회수 2021. 05. 11. 09: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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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중반에 일찍 결혼해서 별다른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었어요. 평범한 전업주부로, 소질이 없었던 살림과 육아만 했죠. 10대 때는 악기를 전공하고 싶어서 음대를 준비했는데 IMF가 터지는 바람에 대학에 못 갔어요.”


정미란 씨는 스스로도 예상치 못 했던 계기로 사업가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던 중 일회용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을 알게 됐고, ‘우리 딸이 이런 걸 써야 한다니’ 라는 생각에 몸서리치다 면생리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회용 생리대를 수 십 년 사용한 자신의 건강보다 아이가 더 걱정이었다.

출처: 유튜브 '퇴경아 약먹자' 채널 영상 캡처
일회용 생리대에 들어있는 고분자흡수체

면생리대를 제대로 만들고 싶어서 평생 직장생활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지만 창업에 도전했다. 배경지식도 경험도 없이 맨바닥부터 시작했으니 온갖 시행착오를 다 겪을 수밖에 없었다. 법규를 제대로 몰라 식약처에 신고를 당할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냥 딸에게 면생리대 몇 개 만들어 주고 끝낼 수도 있던 일인데, 왜 고생해 가며 창업을 했던 걸까. 3년차 사회적 기업 ‘퀸비스토어’를 이끄는 정미란 대표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출처: 퀸비스토어

사업 경험도, 직장생활 경험도 없는데 회사를 만드셨어요.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창업 전에는 두 아이 엄마로 평범하게 살았는데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을 접하고 많은 고민을 했어요. 내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다가 점점 더 생각이 많아졌죠. 그렇게 면생리대를 알게 되고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판매를 시작했는데, 불법이라고 식약처에 신고하겠다는 분이 나타났어요. 깜짝 놀라 알아보니까 진짜더라고요.


처음엔 어리둥절했어요. 화학 물질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100%면만 시장에서 사다 만든 건데, 이게 왜 기준 위반인가 하고요. 원단을 미싱으로 재봉하면 나오는 상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알고 있었던 거예요. 의약외품으로 분류되어 식약처 제조 허가와 품목허가를 완료해야 합니다. 첫 시작부터 큰일이었죠. 


컨설팅 비용은 2000만 원 정도에 시험비도 따로 들고, 제조시설 관리자도 구해야 했어요. 지역이 강원도이다 보니 전문 인력도 부족하고 제조업체 찾기도 어려웠어요. 주변에서도 힘들다, 하지 마라 하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관이 생길수록 ‘이게 왜 안되지? 될 것 같은데?’ 이런 고집이 생기더라고요. 청개구리 성격이죠(웃음). 궁금하면 공부하고 찾아보는 성격이에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일단 그냥 가보고, 아니면 수정하면 되니까요.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해 보고 싶은 건 일단 시작하는 편이에요. 컨설팅도 의뢰하고 다른 면생리대 회사도 찾아가면서 백방으로 노력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지 2년 반 만에 시설과 품목허가 모두 완비했습니다.

출처: 퀸비스토어

회사를 만들고 식약처 허가도 받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물건만 잘 만들면 많이 팔릴 거라 예상했지만 일주일에 한두 개 주문 들어오는 게 고작이었다고. 잘 만드는 것만큼이나 잘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정 대표는 정부 지원사업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정부에서 창업자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원주 혁신도시 관공서몰에도 입점했어요. 정부 지원사업이 생각보다 다양하고 수수료도 무료이거나 아주 저렴하더라고요. 그런 지원사항들을 최대한 활용했어요. 지역 마켓도 나가고, 서울이나 부산 대구 등에 큰 전시나 행사가 있으면 참여했어요. 그렇게 1년 정도 하니 조금씩 매출이 올랐고, 지난해부터는 수출도 시작했습니다.”


아직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내실을 다져가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에 조급하지 않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작년에는 한 품목으로 5억 가까이 매출이 발생했고, 직원들 급여 밀리지 않고 꾸준히 상품 개발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이 나고 있다고. 정 대표의 올해 목표는 회사 건물을 사서 이사하는 것이다.

20~50대 여성 직원들로 구성된 기업인데, 여성친화적 기업으로서의 목표가 있으신가요.


네, 나이대가 다양하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전 직원이 이름 뒤에 ‘님’자를 꼭 붙여서 부르고 있어요. 회식문화는 직원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요. 코로나19 전에는 같이 공연을 보기도 했어요. 공예 배우기, 심리상담을 하기도 해요. 회식은 낮에 합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면 업무시간에 회식을 해야 맞는 거니까요(웃음).


면생리대에서 요실금 패드 아이디어를 얻고 연구중이신 걸로 압니다. 시니어를 위한 제품 개발까지 이어진 부분이 흥미로운데요. 현재 개발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초경을 앞둔 딸을 위해 면생리대를 완성해서 친정엄마께 자랑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생리대를 요실금패드로 잘 쓰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아, 우리가 초경에만 집중하고 완경에 대해서는 충분한 교육이나 정보가 없었구나 하고요. 생리대와 요실금 패드, 팬티로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소재개발이 70%정도 진행되었어요. 올해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고, 수출도 논의 중입니다.


딸을 위해 직접 만든 면생리대에서 시작한 정 대표의 관심사는 점차 (여성) 건강 분야로 넓어졌다. 생리대를 만들고 판매할수록 보건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친환경적인 소재에도 집중하게 됐다. 주력상품인 면생리대만큼이나 제로웨이스트 키트, 소창행주 등 친환경 제품 매출도 늘었다. 취약계층 여성들을 포함해 보건교육도 진행 중이다.

출처: 퀸비스토어

면생리대 제작에 손이 많이 갈 것 같은데, 단가 유지는 어떻게 하시나요.


면생리대는 의약외품이라 아무리 손이 많이 가도 안전성이 최우선이에요. 최대한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게 목표라서 품질 쪽으로는 절대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이라는 지원을 받아 시작했거든요. 지금은 사회적기업으로서 지역의 취약계층 근로자분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올해는 지원사업을 통해서 원료개발을 진행했고 특허 같은 지식재산권 취득, 제품개발 비용도 아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 기업 지원제도를 유용하게 활용하면서 운영하다 보니 단가를 유지하면서 좋은 제품 계속 만들고 신상품 개발까지 가능한 것 같습니다.

출처: 퀸비스토어
2019년 한국관광공사에서 진행한 설명회

창업 전과 후 스스로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시나요.


퀸비스토어를 만들기 전에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만 살았어요. 그런데 창업 후에 갑자기 대표가 되어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지요. 매달 급여 날이 되면 압박이 왔어요. 매출은 성적표로 다가왔고 자연히 스트레스도 커졌습니다. 


하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모르는 부분은 공부해 가면서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민해서 결정한 다음에는 주저없이 실행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으면서 앞날을 계속해서 설계해 나가면 되니까요. 제가 모르던 분야에 도전한 거니까 많은 담금질이 필요하겠죠. 예상한 바입니다. 느리게 발전하더라도 단단해지려고 해요.


사업을 통해 내면적으로 큰 변화를 겪으신 것 같아요. 경영인이 아닐 때의 ‘정미란’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경영인이 아닌 나는 누구인가… 한참을 생각하게 되네요. 그런데 딱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요. 창업하고 3년 동안 어디에 가든지 저 자신을 경영인으로만 소개했거든요. 전업주부에서 회사 대표가 되면서 ‘정미란’이라는 내 이름 세 글자를 온전히 찾았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막중해졌어요. 그래도 만족합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사회에 적응해 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합니다. 회사 목표에 맞춰서 나 자신을 설계하는 재미도 쏠쏠해요.


창업 3년 만에 사업가가 아닌 자신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에 푹 빠지게 된 정 대표. 2년 전 경영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어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바쁜 삶을 사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가족이다. 특히 야근이나 주말 출근할 때 도시락까지 싸 주며 엄마를 응원하는 큰아이는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은인’ 이다.

출처: 정미란 대표 제공

“1년 전에 큰아이가 도시락에 쪽지를 넣어 줬어요. 회사 와서 도시락 먹으면서 아이가 써 준 글을 읽었는데, 한없이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어요. 자세히 보면 편지에 제 눈물 자국도 있답니다(웃음). 가족은 제가 더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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