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이 남긴 26조원의 행선지, 최종 정리 해보니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계열사 상속과 사회 환원
지난달 30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유산 상속에 대한 상속세 약 12조5000억원을 서울 용산세무서에 신고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상속세 세입(3조9000억원)의 3배 넘는 규모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액수다. 2011년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 사망 당시 유족들이 부담한 3조4000억원의 4배 가까운 금액이다.
건국 이래 최대의 상속세 금액이 공개되자 세간의 관심이 삼성에 쏠렸다. 유족들은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미술품을 포함해 약 26조원에 달하는 이 회장의 유산을 어떻게 나누기로 했을까. 삼성가의 상속과 사회 환원 내역을 정리했다.
◇이 부회장 지배력 강화하되 가족끼리 사이 좋게
삼성전자와 생명, 물산 등은 최근 이 회장의 삼성 계열사 지분 상속에 따른 지분 변경 내용을 공시했다. 공시에 따르면 장남 이재용 부회장은 기존에 보유했던 삼성생명 지분(20.76%)의 절반을 상속했다. 이재용·이부진·이서현 3남매가 3대2대1로 나눔에 따라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개인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관장은 삼성생명 지분을 포기했다.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요약된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삼성전자 대주주인 삼성물산 최대주주로서 삼성전자 경영권을 확보해 왔다. 여기에 추가로 삼성생명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지배 축을 손에 넣게 됐다. 이로써 ‘이재용→물산→생명→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연결 고리가 더욱 강화됐다.
삼성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의 이건희 회장 보유 지분은 법정 상속 비율에 따라, 이 회장의 부인 홍 전 관장이 9분의 3, 이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각 9분의 2씩 나눠 가졌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 중심의 기존 삼성그룹 경영 체제를 견고히 하면서 가족 간 갈등이 최대한 표출되지 않는 선에서 재산 분할을 마무리했다고 분석했다.
◇배당금으로 충당하는 역대급 상속세
유족들은 상속세를 5년 동안 6차례에 나눠서 내기로 했다. 유족들은 첫회분 상속세인 약 2조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배당소득(지난해 약 1250억원)이 있어 대출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삼성전자 지분이 없는 두 자매는 제2금융권에서 상당액을 대출을 받았다는 후문까지 돌았다.
삼성 일가는 앞으는 계열사 지분 중에서도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배당금으로 상속세를 충당할 계획이다. 지분율을 고려하면 홍 전 관장은 연간 2250억원, 이 부회장은 1600억원, 이 사장과 이 이사장은 각각 910억원씩 삼성전자 배당금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른 계열사를 합쳐도 삼성 일가가 연간 받을 수 있는 배당금은 7000억원 안팎이라 매년 2조원이 넘는 상속세를 마련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첫 ‘중앙 감염병 전문 병원’ 세운다
삼성가의 파격적인 사회 환원도 주목 받았다. 보건•건강 분야 증진에 내놓은 1조원이 대표적이다. 그중 7000억원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출연해 국내 첫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과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설립·운영에 투입될 예정이다.
3000억원은 소아암·희소 질환을 앓는 어린이 1만7000여명의 치료비 지원에 사용된다. 삼성 측은 사회 환원 방안을 두고 ‘이건희 재단’ 설립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지만, 사회적 논란이 가장 적고 실효성 있는 방법으로 결론을 냈다고 한다.
◇한국 문화예술계 역대 최고의 경사
이 회장이 평생 모은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2만3000여점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키로 했다. 기부 목록 대부분은 고미술품과 근대미술품이며 자코메티, 베이컨, 로스코 등 서양 현대미술품 대부분은 공익 재단인 삼성문화재단(삼성미술관 리움, 호암미술관)으로 가는 것으로 정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2만1600여점이 들어간다. 특히 이 회장 부부가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며 처음 구입한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를 비롯해 국가지정문화재 60건이 포함됐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총 43만여점. 이 중 5만여 점이 기증품인데 이번 2만점 기증은 기증 문화재의 약 43%에 달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의 경사’라는 분위기다. 감정평가 기관에서는 인왕제색도 한 점만 최소 500억원 이상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고갱,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달리, 샤갈, 미로, 피카소 등 서양 근대 미술사의 거장 화가 8인, 한국 근현대 대표 거장의 그림 등 1400여점을 기증한다. 특히 피카소의 도자기 112점을 확보해 그동안 ‘피카소 작품 하나 없는 국립 미술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소장품의 질을 급격히 끌어올리는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방 공립 미술관까지 챙겼다. 전남도립미술관에는 허백련, 대구미술관에는 이인성, 광주시립미술관에는 오지호, 제주 이중섭미술관에는 이중섭, 강원도 박수근미술관에는 박수근의 그림을 보내는 식으로 지역의 특성과 대표 작가를 선별한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은 오는 6월 국립중앙박물관의‘고(故)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을 시작으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