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없어 수술 못합니다"..흉부외과의 '경종'

조회수 2022. 6. 29. 14: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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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 감소
2024년이면 은퇴 전문의가 배출 전문의 추월할 듯

암울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심장 수술을 할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장혈관흉부외과(이화 흉부외과)에 지원하는 전공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 잘 버는 인기 진료과로 전문의가 쏠리고 있다고 하지만, 줄어드는 숫자가 꽤 심각하다고 합니다.

흉부외과학회가 발표한 ‘연도별 흉부외과 전문의 배출 현황’을 보면 2017년 29명 이후 2018년 22명, 2019년 21명, 2020년 21명, 2021년 20명으로 꾸준히 줄어왔습니다. 1993년 57명을 배출한 것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입니다.

이에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이사장 김경환)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고 흉부외과가 맞은 위기와 대책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들은 흉부외과 전문의 부족으로 의료공백이 커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흉부외과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정부 차원의 흉부외과 및 필수의료과 대책위원회를 설치 및 운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우리나라의 흉부외과 전문의는 얼마나 부족한 것일까요.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 제공

◇흉부외과, 대표적인 전공의 기피과

흉부외과는 환자의 생명에 직결되는 심장과 폐, 대동맥, 혈관 관련 질환을 수술로 치료하는 진료과목입니다. 성인심혈관, 소아심장, 일반흉부, 중환자, 외상 등 5가지 진료 분야로 이뤄져 있습니다.

흉부외과는 전공의가 기피하는 대표적인 진료과입니다. 2022년 국내 빅 5 병원 전공의 모집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빅 5 병원은 가톨릭중앙의료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 등을 말합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의 2022년 흉부외과 정공의 모집 정원은 5명이었는데, 지원자는 단 한 명이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정원 4명에 지원자는 역시 1명이었습니다. 세브란스는 정원 4명에 지원자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서울아산병원은 정원 4명, 지원자 3명이었습니다. 앞선 병원들보다 지원자는 많았지만 여전히 미달이었죠. 서울대병원만 정원 4명에 지원자 4명으로 겨우 미달 사태를 피했습니다.

◇배출하는 전문의보다 은퇴 전문의가 더 많을 것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흉부외과학회에서도 역피라미드식 고령화 구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 학회에 등록된 전문의 회원은 총 1535명입니다. 이 중 50대 이상 회원은 707명으로 60.8%를 차지합니다. 전형적인 역피라미드식 고령화 구조죠. 여기에 활동 전문의 448명(38.4%)은 기업 및 봉직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21%는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흉부외과학회는 2024년이면 은퇴 전문의가 배출 전문의보다 많아지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학회는 올해 은퇴 전문의 24명, 배출 전문의 32명, 2023년에는 은퇴자 20명, 배출 전문의 32명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023년년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배출 전문의가 많지만 2024년부터는 상황이 뒤집힐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회는 2024년에는 은퇴 32명, 배출 전문의 21명으로 상황이 역전될 것으로 보이고, 2025년엔 은퇴 전문의 33명, 배출 전문의 19명으로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흉부외과학회 관계자는 “활동 전문의 1161명의 37.5%(436명)이 10년 내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며 “이런 추세면 전문의 충원은 10년간 200명 내외인데, 이렇게 되면 전체 활동 전문의 수는 1000명 미만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이어 “2024년이면 연간 30명 이상 전문의가 부족한 현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2009년 한국보건사회 연구원도 흉부외과 전문의가 324~1233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유일하게 흉부외과 전공의 미달 사태를 피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제공

◇전문의 줄지만 수술∙진료 수요는 증가

더 큰 문제는 인력 수급은 줄어드는데 비해 흉부외과 진료 수요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1년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사망 원인 1∙2위가 흉부외과 질환인 암 또는 순환기 질환이었습니다. 특히 폐암 발병률은 경증 암인 갑상선 암을 제외하면 1위에 속하죠. 폐암은 흉부외과의 주요 진료 분야입니다.

최근 흉부외과 의사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심장이나 폐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중증 환자에 대한 에크모 치료를 담당하면서 사망을 막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회는 이런 흉부외과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의료진 부족 현상이 지속돼 전국 의료 기관 곳곳에 의료공백이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엔 기존 전문의 인력으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곳곳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부족입니다. 흉부외과학회는 2019년 전문의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실시했는데요, 조사 결과를 보면 흉부외과 전문의는 주말을 제외하고 평균 63.5시간, 1일 평균 12.7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흉부외과 전문의들에겐 주말 근무는 당연하고 1개월 평균 당직 일수도 평균 5.1일이었습니다. 병원 외의 대기 근무는 한 달에 10.8일이었습니다. 또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소속 흉부외과 전문의의 51.7%가 번아웃을 겪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김경환 흉부외과학회 이사장은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존 인력이 당직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휴식 없는 당직이 이어지면서 번아웃 현상도 심각하다”고 지적했죠.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tvN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도 전공의가 과로에 시달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흉부외과 전공의 도재학(정문성)이 수술 도중 선 채로 잠이 들어 집도의 김준완(정경호)에게 핀잔을 듣는 장면이죠.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겁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흉부외과 의사를 연기한 정경호 배우. /tvN 방송화면 캡처

◇수가 조정과 전공의 지원 필요

학회는 부실한 정부 정책도 흉부외과 전문의 부족에 한몫했다며 저수가와 보상 문제 등을 지적했습니다. 흉부외과는 고난도에 고위험이란 특성상 노동집약적이고 장비집약적인 초기 투자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학회는 국내 의료 정책은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비현실적으로 낮은 의료 수가를 흉부외과에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죠.

이에 학회는 정부와 국회에 ‘흉부외과 및 필수의료과 대책 위원회(가칭) 설치’, ‘흉부외과 위기에 대한 정부 주도 조사’, ‘흉부외과 진료수가 합리화와 전공의 수련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했습니다.

김경한 이사장은 “이미 현 문제에 대해서 정부 측에 의견을 충분히 전했다”며 “흉부외과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흉부외과만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 근간에 대한 문제인 만큼 이제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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