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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0% 줄었지만, 대기업 그리워 한 적 단 한번도 없어요

조회수 2020. 10. 4. 14: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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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그냥 다닐걸' 같은 생각,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사람들은 직장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연봉을 본다. 물론 연봉이 전부는 아니다. 가끔 손해를 감수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슬예나(33)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대기업을 다니다 학창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뒤늦게 방송국 시험을 준비해서 PD가 됐다. 일을 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는 그는 모여라 딩동댕, 하나뿐인 지구, 딩동댕 유치원, 보니하니, 멍냥꽁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출한 EBS 9년차 PD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방송국 PD의 길을 걸어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jobsN
EBS 이슬예나 PD

-방송국이 무척 분주해 보인다. PD로서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소개해달라.

“방송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9년차 PD입니다. 맡고 있는 프로그램의 아이템을 기획하고 방송을 어떻게 만들지 계획한 후 촬영과 편집 과정을 거쳐서 방송으로 내보냅니다. 입사하고 조연출을 맡았던 첫 프로그램이 ‘장학퀴즈’였어요. PD로서 처음 연출을 맡았던 프로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모여라 딩동댕’이었죠. 그 후 환경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하나뿐인 지구’를 1년간 연출했었고, 최근엔 ‘보니하니’의 연출을 맡았었습니다. 현재는 잠시 유아어린이 TF팀에서 신규 어린이 컨텐츠 개발을 하고 있어요.”


-언제부터 PD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이야기해요. 학창 시절에 어렴풋이 이야기 했던 걸 진짜 하고 있는 아이는 저밖에 없다고. 방송국 PD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대요.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리고 영상제작동아리에 들어갔죠. 주기적으로 하는 영상제 때마다 드라마를 만들었어요. 15분 짜리 드라마였는데,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친구들을 배우로 섭외해서 촬영도 하고 편집까지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허접한 수준의 멜로 드라마였지만, 반응은 꽤 좋았어요. 그걸 보고 동아리에 지원했다는 후배들도 있었거든요. 그때 드라마를 만들어보면서 영상 제작하는게 재밌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했습니다.”


-첫 직장이 대기업이라고 들었다.

“대학교 4학년 때 PD 시험 준비를 했어요. 여러 방송국 입사 시험에 응시를 했는데 번번히 떨어졌습니다. 뽑는 숫자가 워낙 적어서 힘들기도 했지만, 여러번 좌절을 겪고 나니 제가 방송국에서 일할 운명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졸업 후에 경제적인 부분도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해서 막연히 방송국 시험만 기다릴 수 없었죠. 그래서 PD를 포기하고 기업에 원서를 내기 시작했어요. 신입 사원 공채로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기업에서는 무슨 부서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광고 부서에 있었어요. 어떤 제품을 어떤 메시지로 광고해야할 지를 기획하고, 광고제작사가 광고를 만들어오면 검토하고 수정하는 역할을 하는 부서였어요. 지면 광고 관련 일도 하고 온라인 사이트를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이슬예나씨 제공
'보니하니' 생방송중(좌), '멍냥꽁냥' 촬영중 하니(김유안)와

-안정적인 대기업에 다니다가 방송국 PD의 꿈을 다시 꾸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하고 나를 위해서도 행복하게 살겠다는 것이 목표였어요. 없는 시간을 쪼개서 평소 배워보고 싶었던 스페인어도 배우고 기타도 배워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일을 하다 보니 야근도 많고 회식도 잦았어요. 시간을 쪼개 써도 일을 제외하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한 두 시간 밖에 남지 않더라구요. 아침에 출근을 하고 퇴근해보면 잘 시간이었죠. 내 시간을 갖기가 힘들었습니다.


일 하는게 신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생각이 조금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런데 대기업이라 조직이 크다보니 일을 추진하는 과정이 더디고 힘들었어요.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일을 진행하면 팀원-사수-파트장-팀장-본부장 등으로 올라가면서 컨펌을 받고 일을 확정짓는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큰 조직에서는 당연한 절차였지만 제 성격엔 더디게 느껴졌어요.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기까지 너무 멀어 보였습니다. 광고 제작 현장에 나가더라도 내가 하는 일은 제작 현장을 그냥 지켜보는 일이다보니, 일하는 시간이 내 시간이라는 생각 보다는 ‘업무’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면 되도록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쓰고 싶었습니다.”


-방송국은 필기 시험도 보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어떻게 PD 시험을 준비했나.

“회사를 다니며 주말마다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시험을 준비해 나갔어요. 스터디 모임에서 서로 쓴 글을 첨삭해 주기도 하고, 상식 공부도 틈틈이 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대학생 때 준비하던 마음과는 좀 다르더라구요. 조금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아요. 글도 잘 써지고 자신감도 조금씩 생겼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주말 밖에 시간이 나질 않아서 급하지 않게 천천히 준비했어요. 그렇게 2년 정도 공부했습니다.”

출처: jobsN
이슬예나 PD

-방송국 PD 입사 시험은 어떤 전형 과정을 거치는지.

“방송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방송국 같은 경우에는 서류 전형을 거친 다음에 필기 시험을 봐요. 필기에는 작문과 논술, 상식 시험을 봅니다. 필기를 통과하면 면접을 보는데, 실무평가 방식으로 면접을 진행해요. 오전에 키워드를 주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오도록 해요. 그걸 가지고 면접을 보는거죠. 그리고 마지막 최종 면접을 통과하면 합격입니다. 매년 전형 과정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해요. 제가 입사했던 2011년도에는 10명의 PD를 뽑았어요. 다른 해보다 조금 많이 선발한 편이었습니다.”


-방송국에 입사하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연출을 맡게 되는지 궁금하다.

“입사하고 연수를 6개월 정도 받았어요. 연수가 끝나면 프로그램의 조연출을 맡습니다. 조연출은 연출하는 PD를 돕는 역할을 해요. 처음 조연출로 배정됐던 프로그램이 ‘장학퀴즈’였어요. 녹화 전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출연할 학생들을 미리 만나서 방송 녹화에 대해 설명해주고 준비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했습니다.


‘장학퀴즈’ 녹화 때에는 스튜디오에서 방송 스태프끼리 통신할 수 있는 인터컴을 끼우고 부조정실에서 총괄하는 연출 PD와 커뮤니케이션을 해가며 현장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렇게 1년 6개월 정도 조연출로 여러 프로그램들을 거치고 난 후 PD로서 첫 연출을 맡게 됐어요. 방송계에서는 그걸 ‘입봉’이라고 불러요. 제 입봉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의 주말 아침을 담당하는 ‘모여라 딩동댕’ 이었습니다.”

출처: 이슬예나씨 제공
하나뿐인 지구 '물건다이어트' 도쿄 현지 촬영중

- 직접 연출했던 프로그램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프로가 있으면 소개해달라.

“환경 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를 연출했을 때, 미니멀리즘을 소재로 ‘물건 다이어트’ 편을 만든 적이 있어요. 어떻게 만들어볼까 생각하다가 일본의 유명한 미니멀리스트를 직접 만나서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없는 예산에도 무리를 해서 일본 도쿄로 찾아갔어요.


촬영감독과 둘이 직접 장비를 나눠들고 일본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힘들게 만들었지만 미니멀리스트의 놀라울 정도로 심플한 생활을 접하고는 촬영하면서 힐링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방송 이후에 온라인에서 반응이 꽤 있었어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 프로그램을 많이 소개해줬습니다. 공들여 찍은 작품을 시청자들이 알아봐 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어요.”


-방송에도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가장 마음이 끌리는 장르가 있다면.

“운 좋게 빠르게 EBS에서 만드는 거의 모든 장르의 연출을 해봤어요. 그 중에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대학교 동아리 시절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연출했던 ‘멍냥꽁냥’이라는 웹 드라마가 있어요. 15분 짜리 웹 드라마인데 청소년들에게 인기있는 보니와 하니가 주인공이에요.


그동안 방송에 대한 피드백을 생생하게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웹 드라마이다보니 댓글로 다양한 피드백이 올라와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만든 드라마인데 중고등학생들까지 드라마를 보고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댓글로 적어주기도 해요. 청소년들은 나름대로 느끼는 고민이 무척 많은 시기에요. 위로가 필요한 아이들이죠. 그래서 그들의 고민을 어루만져줄 컨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가 만든 웹 드라마를 보면서 고마움을 느끼는 친구들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 학생이 ‘학업으로 지쳐 있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치유되는 느낌이었어요’라고 남겨줬던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시즌2를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와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대기업에 계속 일했더라면 지금쯤 꽤 많은 연봉을 받았을 것 같은데, 경제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던 적은 없었는지.

“처음 방송국에 입사했을 때, 이전과 이후의 제 세금계산서를 비교해 본 후배가 ‘언니, 왜 이직했어’라고 농담조로 말한 적이 있어요. 수입이 20% 이상 줄었으니까요. 그런데, ‘대기업에 그냥 다닐 걸’ 같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인생의 가치를 놓고 따져보면 훨씬 값진 것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기업에서 일할 때는 수동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PD로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부터는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고 창작하면서 매 순간 내가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당시 선택이 내 인생에서 제일 잘 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어떤 PD가 되고 싶은가.

“성장하고 싶어요. 필드에서 계속 일하고 배우면서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싶습니다. 드라마에도 애정이 많아요. 짧은 웹 드라마에서 시작했지만, 장편 드라마나 어린이 청소년 드라마 같은 것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렇게 계속 성장하는 PD가 되고 싶습니다.”


글·사진 오종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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