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10년간 주말마다 '곰배령'을 찾은 이유

조회수 2021. 6. 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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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연상케 하는 이곳!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강원도 인제의 '곰배령'입니다.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하는 아름다운 산"으로 소개되는 곳인데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장영목 씨도 20년 전 '곰배령'의 모습에 반해 10년간 매주 주말마다 찾아가 자신이 살 집을 손수 지었다고 합니다. 곰배령의 매력은 무엇일지, 이길우의 '식물도감 펼쳐 놓은 듯 꽃바다의 향연' 글을 통해 확인해보세요!


▶곰배령 정상의 광활한 초지. 다양한 들꽃이 초지를 장식해 천상의 화원으로 불린다.

조선 최고의 검객 백동수(1743~1816)는 젊은 시절 무술과 도학을 닦았다. 절륜의 검술을 익혔으나 서른이 되도록 벼슬길이 열리지 않았다. 백동수는 식솔을 이끌고 강원도로 향했다. 깊은 산골에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농사를 지으며 검술을 다듬었다. 그러길 10년. 마침내 정조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복귀해 정조의 친위군영(경호부대)인 장용영에 근무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 최고의 무예서 〈무예도보통지〉를 만드는 주역이 됐다.

백동수가 10년간 머물렀던 강원 골짜기가 바로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다. 흔히 곰배령으로 부른다. 원시림 수준의 활엽수 숲과 나무 그늘에서 자라는 고사리 등 양치식물이 연출하는 푸른색 바다, 각종 들풀(야생화)이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숲길을 입산하려면 예약해야 한다.

번거롭긴 하지만 그런 불편함은 충분히 보상되고도 남는다. 곰배령 정상의 광활한 초지는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며 모두를 유혹한다. 동심을 설레게 만들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주인공들이 마음껏 뛰어놀던 알프스 초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하루 입산 허용 900명, 예약해야 입산 가능

▶곰배령으로 가는 계곡의 아름다운 물줄기

봄이 밀려나고 여름이 자리 잡는 5월 말~6월 초는 야생화를 보기 좋은 시기다. 5월 29일 곰배령을 품고 있는 점봉산 기슭에 도착했다. 점봉산은 설악산과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산이다. 설악산의 화려함에 견줘 산세가 소박하고 수수하다. 입구에서 입산 허가 확인을 받아야 산에 오를 수 있다. 하루 입산 허용 인원은 900명. 성수기에는 인터넷 예약이 순식간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입산할 수 없다.

전국에서 온 탐방객들이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신발 끈을 묶는다. 입산 전 화장실 출입은 필수다. 왕복 3~4시간 동안 화장실이 없다. 자연보호를 위해 산속에 화장실을 만들지 않았다. 계곡길은 들어가자마자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나무가 우거져 있다. 길도 평탄하다. 산새 소리와 계곡물소리가 어울려 멋진 화음을 만들어낸다.

탐방객들의 발걸음이 자주 멈춘다. 야생화의 미소 때문이다. 굳이 이름을 몰라도 답답하지 않다. 허리를 굽혀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꽃에 가까이 대고 바라본다. 계곡에서 부는 바람에 야생화들이 하늘하늘 춤춘다. 일 년 내내 계곡물이 마르지 않아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 꼽히기도 한다.

30분 정도 계곡길을 가면 강선마을이 나온다. 화전민들이 무리 지어 살던 곳이다. 화전을 일구고 산나물이나 약초로 연명하는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지면서 화전민들은 산골을 떠났고 지금은 펜션 몇 곳이 자리 잡고 있다.


희귀종 66분류 군 등 854종 식물 서식

▶(위에서부터) 벌깨덩굴, 감자난초, 쥐오줌풀. 모데미풀

이제 오솔길의 연속이다. 길은 한없이 부드럽다. 호흡이 가빠지지 않는다. 계곡 폭포도 싱그럽다. 쥐오줌풀, 은방울꽃, 참꽃마리, 벌깨덩굴, 삿갓나물 등 들꽃과 들풀들이 탐방객을 온몸으로 환영한다. 양치식물도 계곡의 주인공이다. 마치 고생대로 빠져든 느낌이다. 안개라도 끼어 있다면 나무 뒤에서 목이 긴 공룡 히드로테로사우루스가 나타날 것만 같다.

서둘러 정상을 탐하지 말자. 쉼터에 앉아 청정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산행의 즐거움이 더해진다. 속세의 이야기도 멀리하고 자연과 대화를 해본다.

계곡길 막판 1㎞ 정도 약간 가파른 길을 오르면 곰배령에 오른다. 출발한 점봉산 산림생태관리센터에서 5.1㎞. 깊고 짙은 활엽수림이 사라지고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신기하다. 곰배령이라는 이름은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누워 있는 형상이라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해발 1100m 고지에 평원이 형성돼 있다. 시기만 잘 맞추면 마치 식물도감을 펼쳐 놓은 것처럼 다양하고 화려한 꽃들이 꽃바다를 만들어 탐방객을 반긴다.

긴 줄이 만들어졌다. 곰배령 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한 기다림이다. 지루해도 모두 짜증 내지 않는다. 사방이 달력 사진이기 때문이다. 멀리 백두대간의 산들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피곤을 달래준다. 설악산의 대청봉과 중청봉도 반갑게 시야에 들어온다.

곰배령에는 희귀종 66분류 군 등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식물 가운데 20퍼센트에 달하는 약 854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곰배령은 할머니들도 콩자루를 이고 장 보러 넘어 다닐 만큼 완만한 경사길이다. 가족 단위의 탐방객들이 많다.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하는 아름다운 산으로 소개되는 곳이다.


10년간 주말마다 들어와 지은 집

▶활엽수와 양치식물로 가득 찬 곰배령 계곡은 마지막 남은 원시림으로 사랑 받고 있다.

이제 서서히 하산한다. 아쉽지만 산은 오르면 내려가야 한다. 들꽃들이 고개를 흔들며 배웅한다. 이곳의 주인은 그들이다. 인간은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일 뿐. 하산 길의 탐방객 표정에는 만족함이 가득하다.

장영목(60) 씨는 6년 전 퇴직하고 곰배령에 스며들었다. 서울에서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장 씨는 20년 전 우연히 곰배령을 들렀다가 매력에 빠졌다. 퇴직 후 삶을 곰배령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은 장 씨는 2004년부터 10년간 매주 주말에 곰배령으로 들어와 자신이 살 집을 손수 지었다. 목공 일도 배우고 흙으로 집을 짓는 방법도 배웠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집을 만들었다.

주변에서 미친 짓이라고 놀렸다. 장 씨는 자신의 집을 독특하게 너와 지붕으로 만들었다. 너와는 지붕을 이는데 기와 대신 소나무나 전나무를 잘라 사용한다. 강원도에서는 느에 또는 능에라고 부른다. 너와는 나뭇결이 바르고 잘 쪼개지는 토막나무를 사용한다. 크기는 가로 20∼30㎝, 세로 40∼60㎝, 두께 4∼5㎝ 정도다.

너와의 수명은 10∼20년 정도지만 부분적으로 부식된 너와를 빼고 새것으로 바꿔 끼우는 교체 작업을 해야 한다. 불을 때면 굴뚝이나 까치구멍으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는 지붕의 너와 틈 사이로 빠져나와 집 전체가 마치 자욱한 연기로 휩싸여 독특한 모습을 연출한다. 너와로 이은 지붕은 환기와 배연이 잘되고 단열 효과도 크다.


고집스럽고 꼼꼼한 목공 작업

▶직장을 다니며 10년간 주말을 이용해 집을 지은 뒤 곰배령 사람이 된 장영목 씨가 자신이 지은 너와 지붕 집 앞에서 산골살이를 자랑하고 있다.

장 씨는 10년간 집 짓는 것을 마무리하고 퇴직과 동시에 곰배령으로 들어와 곰배령 사람이 됐다. 살림집과 목공방 외에 세 채의 집을 더 지어 펜션을 운영한다.

장 씨는 인터넷에 광고하지 않는다. 포털에 먼저 노출되기 위해 이웃 간 과도한 광고비를 내며 경쟁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장 씨는 마을 주민 간 회의에서 산길에 가로등을 세우는 것을 반대했다. 깊은 산속에 가로등이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구불구불한 도로를 직선으로 펴서 차도를 만드는 것도 반대했다. 산길은 도시 길과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 씨는 스스로 소수 의견이라 자부한다.

장 씨의 고집스럽고 꼼꼼한 목공 작업은 주변에 널리 알려졌다. 곰배령에 뒤늦게 들어온 두 가구는 장 씨에게 너와 지붕을 맡겼고 전에 있던 직장에서 2021년 창립 기념품으로 장 씨가 만든 나무 도마를 100개나 주문했다. 함께 곰배령에 들어와 고생하는 부인에게 면목이 섰다.

장 씨는 “곰배령은 주민의 60퍼센트가 외지인이기에 토착민의 텃세는 보기 힘들다"라며 곰배령 사람이 된 것을 만족해했다.

ⓒ이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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