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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파격보다 전통을 택하다, 페르소나 5

조회수 2017. 7. 14. 13: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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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발전한 그래픽과 시스템. 하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도
일본 개발사 아틀라스 프랜차이즈 가운데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페르소나> 시리즈 정식 넘버링 최신작 <페르소나 5>가 드디어 발매됐다.

지난 2008년 출시된 <페르소나 4> 이후, 꼭 8년 만이다. 그간 <페르소나 Q: 섀도우 오브 디 래비린스>와 <페르소나 4: 댄싱 올 나이트>를 비롯해 애니메이션과 코믹스 등의 스핀오프 콘텐츠가 꾸준히 나왔었지만, 정식 넘버링 타이틀 출시는 시리즈 팬들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다.


물론, 일본어 버전은 이미 지난해 현지에 출시됐기 때문에 그 따끈따끈함이 다소 반감될 수는 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시리즈 특성상, 사소한 텍스트 스크립트 하나도 놓칠 수 없다. 그래서 <페르소나 5>에 관계된 어떠한 정보도 접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한국어 버전 발매일을 기다려온 팬들도 있을 것이다.

마치 꼭 보고 싶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피하는 것처럼. 그렇게 흡사 억겁과 같이 느껴지는 시간을 지나며 <페르소나 5>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오래 기다려 온 작품이라고 한들, 결국 게임을 접하기 전 모든 유저들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페르소나 5>는 오랜 기다림을 납득시킬 만큼 매력적인 작품일까? 또는 7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이 아깝지 않을 만큼 재미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작품의 핵심 요소를 미리 알게 되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리뷰에서는 <페르소나 5>의 스토리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고자 한다.

대신 위에 상정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는 요소와 그 근거만을 다루려 한다. 필자 역시 <페르소나 5>를 기다리던 팬이기에.
음울함과 유쾌함,
그 사이에서

<페르소나 5>의 메인 테마는 '반역'과 '자유'다. 그리고 일종의 고발 정신이 깔려있다. 주요 에피소드들은 사회 지도층의 부패와 노동 착취 등 일본 사회 전반에 뿌리깊이 퍼져 있는 부조리를 반영한 내용이다. 

 

아틀라스는 이런 사건들을 훑어 지나가며 문제를 고발한다. 각 에피소드는 개별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남기지만, 종단에 다다르면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완벽한가?"

가볍게 즐기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페르소나> 시리즈 개발사인 아틀라스는 본래 작품을 통해 자못 철학적이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기를 즐긴다. 다른 프랜차이즈인 <여신전생>에서도 그랬듯 시쳇말로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을 설정하고, 시나리오 진행 사이사이에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전작인 <페르소나 3>와 <페르소나 4>에서도 그랬고, 그 기조는 <페르소나 5>까지 이어진다. 

 

실제로 게임 내에 고등학생 신분인 주인공이 견뎌내기에는 어려운 상황을 곳곳에 뿌려두고 해결을 종용한다. 그리고 절대적이지만 부당한 권력에 반항해야만 하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게임의 핵심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사건들은 현실에서도 실제로 있을법한 일들이다. 그리고 전작인 <페르소나 4>에 비해 스케일이 상당히 커진 데다, 메인 미션을 해결하지 못하면 주인공에게 실질적인 위해가 가해진다.

등장 캐릭터들이 지닌 ‘각자의 사연’도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해 생긴 것들이다. 그래서 시골 학교 친구들과 전원 생활을 즐기며 정의의 사도 역할을 했던 <페르소나 4>와는 압박감의 정도가 다르다.

거기에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도 꽤 철학적이고 무겁다. 이렇듯 JRPG 특유의 심각한 주제의식이 <페르소나 5> 전반에 흐르는 탓에, 전작인 <페르소나 4> 보다는 한층 진중한 분위기를 띤다.


그러나 진중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게임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캐릭터 간의 가벼운 에피소드가 유쾌한 무드를 적당히 잡아주고, 학교 생활과 아르바이트 등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심각하고 어두운 무드를 내내 유지하던 <페르소나 3>보다 밝다. 그래서 아틀라스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그리워하던 팬들에게도, <페르소나 4>의 ‘청춘 활극’에 흠뻑 빠졌던 사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타이틀이 될 것이다.
작은 변화로 증폭된
게임 자체의 재미

아틀라스는 기술의 발전을 자랑스레 내보이는 개발사는 아니다. 현 세대 하이엔드급 타이틀을 제작하는 개발사에 비하면 기술력이 부족한 편이고, 발전도 더디다. 

 

<페르소나 5>의 그래픽 수준도 스핀오프 타이틀인 <페르소나 4: 댄싱 올 나이트>와 거의 같아 크게 놀랍지는 않다. 

 

물론 전작보다는 캐릭터와 배경 모델링 수준이 크게 높아졌고, <페르소나 3>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지만 감탄할 정도는 아니다.  

 

아틀라스는 그런 약점을 영리하게 극복했다. 오히려 과감한 UI 디자인을 활용해 <페르소나 4>보다 스타일리쉬한 화면 구성을 보여주고, <페르소나 3>의 단축 이동 시스템을 가져와 편의성을 강화했다.


 

 

전투 시스템은 아주 작은 변화를 더해 한층 흥미로워졌다. 여기서 ‘아주 작은 변화’란 ‘페르소나 회화’ 기능을 말한다. ‘페르소나 회화’ 기능은 전투 중 적을 궁지에 몰았을 때 발동되는 선택지로, 선택하는 대화문에 따라 추가 전투 없이 상대 페르소나를 아군으로 영입할 수 있다. 

 

이 기능은 아틀라스 ‘본가’ 시리즈로 불리는 <여신전생> 프랜차이즈에 존재하는 고유한 시스템인데, <페르소나 5>에도 이질감 없이 잘 녹아든다. 

 

그 덕분에 랜덤하게 페르소나 혹은 아르카나 카드를 획득할 수 있었던 <페르소나 3>과 <페르소나 4>에 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페르소나> 시리즈는 턴제 전투 시스템을 채택하고, 속성 상성이 전투 흐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적의 속성을 파악한 후에는 전투가 다소 단조로워지곤 했다.

그러나 ‘페르소나 회화’ 기능을 도입하며 변수가 늘어났고, 이를 잘 활용하면 자원 추가 획득은 물론 캐릭터 SP 관리까지 가능해졌다.

어찌 보면 아틀라스 특유의 난이도로 인한 긴장감은 떨어졌을 지도 모르지만, 이 부분은 ‘CHALLENGE’ 난이도 추가로 상쇄됐으니 크게 아쉬운 부분은 아니다.


이 외에도 페르소나 합체와 강화, 아이템화 등 벨벳 룸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스토리가 핵심이라고는 하나 다양한 페르소나를 수집하고 육성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데, 전작에서는 주력 페르소나가 속한 커뮤니티 레벨이 높지 않으면 육성이 어려웠다. 그러나 페르소나 강화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필요 없는 고레벨 페르소나를 희생시켜 주력 페르소나를 키우는 게 가능해졌다.

무한 ‘노가다’를 피하고 게임의 핵심 재미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트렌디하지만
전형적인

<페르소나 5>는 세련됐다. 학교에서 사회로 게임의 무대를 확장하고, 적당히 심각한 무드와 화려한 UI, 개선된 전투 시스템을 버무려 플레이어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게임 자체의 재미도 괜찮은 편이다. 턴제 전투를 즐기지 않는 유저라면 진행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턴제 고유의 매력을 잘 살려 완성도는 뒤지지 않는다. 

 

아주 강력한 적을 만나도 약점만 잘 파악하면 쉽게 제압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말’만 잘하면 아군으로 포섭하는 일도 가능하니까. 

 

거기에 연애 시뮬레이션을 연상시키는 ‘코퍼레이션(전작의 ‘커뮤니티’ 시스템)’ 콘텐츠도 깊어져 소소한 재미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프랜차이즈 전통의 핵심 경쟁력이자 재미 요소인 시나리오와 캐릭터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전작들은 이번 타이틀에 비해 사건의 스케일이 작지만 주제 의식은 또렷했다.

<페르소나 3> 오프닝 장면에 등장하는 문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플레이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페르소나 4> 역시 마찬가지로 사춘기 고등학생이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자아를 확립하는 과정을 강조했다. 더불어 메인 시나리오 속에 내면의 부정적인 소리를 다루는 방법을 녹여내어, 시리즈 타이틀인 ‘페르소나’의 개념을 재정립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페르소나 5>에는 그런 ‘악센트’가 없다. 20주년 기념 타이틀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사건의 무대를 사회 전반으로 키우고, 이를 해결할 ‘메시아’로 정의로운 고등학생들을 내세운 시도까지는 좋다.

전형적인 JRPG 혹은 ‘이고깽(이세계에서 고등학생이 깽판치는 장르)’의 구도일지언정, 프랜차이즈 특유의 감성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다.

그 고등학생들에게는 나름의 명분도 부여했다. 온당치 않은 이유 때문에 문제아로 낙인 찍힌 이들만큼 기존 체제가 불만스러운 사람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사건의 원흉이 된 문제 요소를 해결하는 과정을 묘사한 내용이 개운치 못하다. 보통 <페르소나> 시리즈의 문제 의식은 학교라는 제한된 무대 위에서 제기됐다.

스케일이 커질수록 사건 간 개연성을 성립시키는 고리를 만들기 어려운 데다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르소나 5>에서는 일을 크게 벌린 후 수습이 힘들자, 황급히 마무리를 지어버린다. 그것도 전형적인 '흑막'을 등장시키며 말이다.

거칠게 말하면 전작들과 비교해서 플롯과 결론에 차이가 없다. 기존 사회 구조와 기득권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제기하기 위해 무대를 키운 게 화근이 된 격이다. ‘사춘기 청춘 활극’의 필터를 씌우고 봐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전작보다 한층 발전한 그래픽과 게임 시스템이 아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페르소나 5>는 JRPG의 현주소를 아주 잘 보여주는 타이틀이다. 그래픽과 시스템은 시대에 맞게 진화했지만, ‘알고 보니 흑막이 있었더라’는 시나리오 구조는 그대로다.

같은 시나리오 얼개를 두고 메인 테마와 캐릭터만 바뀌는 셈이다. 물론 <페르소나 3>와 <페르소나 4>에서 경험한 재미를 고스란히 느끼고 싶은 팬이라면 만족스럽게 플레이할 것이다.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확실하니까.

하지만 <페르소나 5>에서 기존과 다른 재미를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운 타이틀이다. '전통'은 있을지 몰라도, '파격'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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