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반성문 쓰는 방법

조회수 2019. 11. 29.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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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는 행동으로 반성해야 한다.

어른도 반성문을 써야 할 때가 있다.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잘못해 경위서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고, 사업을 하다 문제가 발생해 고객들을 위해 사과문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고, 법률적인 문제로 탄원서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있듯이 문서의 명칭만 달라졌을 뿐 모두 반성문이라는 범주에 포함할 수 있다.


어릴 때 쓴 반성문에는 ‘무조건 잘못했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문구만 담겨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어른이 쓰는 반성문은 다르다. 아무리 진정성이 묻어나도록 자필로 쓰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도 상대방에게 용서를 받는 것은 매우 어렵다. 어린이가 ‘죄송하다.’ 하는 것과 어른이 ‘죄송하다.’ 하는 것은 분명 느낌적으로 차이가 있다.


주위에서 보더라도 연예인 혹은 인플루언서들이 쓴 자필 사과문 혹은 진지하게 촬영한 사과 영상을 본 우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잘못을 했는데 어쩌라고?” “자숙을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자숙이 곧 휴식 아니냐?”라는 비판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른용 반성문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어른용 반성문은 어떻게 써야 할까?


기본적인 반성문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 자기소개
  • 사건의 경위
  • 반성문을 작성하는 이유
  • 잘못한 부분의 반성
  • 피해 내용
  • 피해의 조치 방안
  •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조치 내용
  • 다시 한번 더 사과


대부분의 반성문은 위의 양식을 따른다. 저렇게 반성문만 쓰면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까? 어른용 반성문에는 추가적인 킬링 포인트가 더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무신사’라는 기업이 쓴 사과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0대부터 30대까지 옷에 관심 있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인기 쇼핑몰인 무신사는 7월 2일에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 당시 공안 경찰의 ‘책상을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발언을 이용한 광고 문구를 SNS에 게재해 대중들의 비난을 받았다.

사건 당일 즉시 사과문을 게재했고, 10일 이후인 7월 12일 사건 경위와 사후 조치가 담긴 사과문을 다시 한번 더 게재했다. 그제야 소비자들의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는 사과문의 정석으로 회자되는 삼성 부회장 이재용의 메르스 사태 대국민 사과문과 전현무의 연예대상 사과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은 7월 12일 게재된 사과문 전문이다.
무신사입니다.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당사자인 유가족분들과 관련 단체, 무신사 고객 그리고 이 사건을 접한 네티즌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리며 해당 사건 경위와 사후 조치를 설명드립니다. 폐사는 지난 7월 2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공안 경찰의 ‘책상을 탁 하고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발언을 인용한 광고 문구를 SNS에 게재하였습니다.

해당 문구가 엄중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홍보 목적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콘텐츠 게재 당시 홈페이지(무신사 매거진)에는 검수 과정을 통해 해당 문구가 삭제되었으나 SNS 발행에서는 검수 결과 반영이 누락되어 문제의 문구가 그대로 게재되었습니다. 이후 당일 23시경, 해당 사실을 확인한 후 콘텐츠를 선 삭제 조치하였습니다. 7월 3일, SNS에 두 번에 걸쳐 사과문을 게재하였으며 이를 통해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 사과 및 후원금 전달, 추후 검수 과정 개선, 담당자 및 전 직원에 대한 역사 교육 실시의 계획을 밝혔습니다. 담당자와 검수자에 대한 징계 내용은 문구 작성 경위 및 검수 과정을 파악 중이었기에 사과문에 포함시키지 못했습니다.

7월 4일,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을 통해 유족분들과 사업회 분들께 직접 사과드릴 수 있는 기회를 요청드렸고 7월 9일 오전 11시 30분, 대표이사와 3명의 사업본부장 그리고 콘텐츠 편집팀장이 남영동 대공분실로 방문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자 박종철 열사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후배이신 이현주 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먼저 사무국장님께서 직접 박종철 기념전시실과 박종철 열사가 고문받으셨던 대공분실 509호를 안내해 주시며, 5.18 민주화운동으로부터 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 그리고 박종철 열사의 희생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저희는 진심을 다해 사과드리고 사건 경위와 앞으로 취할 사후 조치 그리고 후원금 전달 등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사무국장님께서는 “문제 해결 방식이 건강한 것 같다”시며, “이번 일로 젊은 세대들이 선한 영향을 받았으면 한다. 넉넉한 마음을 가진 공동체가 되도록 무신사가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으로 사과를 받아 주셨습니다. 후원금에 대해서는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가 진행 중인 박종철 열사의 민주화 운동과 민주주의 가치를 알리고자 하는 다양한 활동에 끼친 누가 조금이나마 실질적으로 회복되길 희망하는 바람으로 전달하는 것임을 설명드렸지만, “방문해주신 것만으로 충분하다”시며 정중히 사양하셨습니다. 따뜻한 말씀과 함께 사과를 받아주시고 영정 앞에서나마 사죄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폐사의 취업규칙에 의거하여 해당 콘텐츠를 만든 담당자는 정직 및 감봉 그리고 직무 변경, 검수를 누락한 편집팀장은 감봉으로 징계 처리되었습니다. 금일(7월 12일), EBS 소속 최태성 강사님을 초빙하여 전 직원을 대상으로 근 현대사 민주화운동에 대한 강의 진행 중에 있습니다. 또한 차주부터 발행되는 콘텐츠는 2명의 검수자를 거쳐 발행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무지하여 발생된 일이지만 그것이 저희 잘못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기에 사후조치들을 무거운 마음으로 진행 중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콘텐츠 제작에 임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검수 체계를 개선하여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콘텐츠가 제작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본 사과문은 무신사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금일부터 3일간 메인 화면에 팝업으로 노출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모든 분께 사과드립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문이다. 이처럼 잘 쓴 사과문에는 몇 가지 킬링 포인트가 있다.



언제 반성했는가?: 잘못은 최대한 빠르게 대처한다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신경을 쓰지 않거나 끝까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하면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무신사는 사건 당일에 콘텐츠를 삭제 조치하고 바로 그다음 날 2번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물론 역사적 인식 부족으로 잘잘못이 명백한 사건이긴 하지만 빠르게 잘못은 인지하고 사과문을 게재해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난 여론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이처럼 반성문을 작성할 때 최대한 사건이 발생하고 빠른 시일 내에 상황을 정리해 반성문을 작성하는 것이 좋다.



어떤 자세로 반성하는가?: 적극적으로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

반성문을 작성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자세가 발동되어 글에 본의 아니게, 오해가 있어, 착오가 있어,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의도한 바와 달리 등 반성 대신 핑계나 책임 회피를 하는 것 같은 글이 써진다. 이럴 경우 의도한 바와 달리 사건을 끝내 진정시키지 못하거나 상황을 더욱 악화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낮은 자세로 본인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야 한다.
출처: Go! Go! Nihon



어떻게 반성할 것인가?: 말보다는 행동으로 반성해야 한다

무신사가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말보다 행동으로 반성했기 때문이다. 1차 사과문에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 사과 및 후원금 전달, 추후 검수 과정 개선, 담당자 및 직원 역사 교육 실시 계획을 밝혔고 10일 이후에 실시 결과를 정리해 사건 경위와 사후 조치 내용을 담은 2차 사과문을 게재했다.


어린이들이 쓰는 반성문에는 계획까지만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어른이 쓰는 반성문에는 이에 결과까지 함께 담아야 한다.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한 무신사의 사과문이 미래형(~하겠습니다.)이 아닌 과거형 문장(~했습니다.)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맹렬했던 비판을 한 풀 꺾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사과하는가?: 피해자를 명확하게 인지한다

반성문을 쓰는 가장 큰 목적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피해자를 명확하게 인지함을 반성문에 명시하고 피해자가 느꼈을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함께 담아야 진정성이 묻어나는 반성문을 쓸 수 있다. 무신사는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 후원금을 전달하고자 했다.


후원금만 전달하고 끝났으면 형식적인 사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서 박종철 열사의 후배를 만나 사죄를 구하고 고문받았던 장소를 직접 방문하여 다시 한번 박종철 열사의 희생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님도 사과를 받아주셨다는 것을 반성문에 명시했다.


이처럼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게 사죄를 구하고 사과를 받았다는 내용을 반성문에 포함한다면 반성문을 읽는 제3자 또한 반성문을 수용하게 만들 것이다.



왜 반성하는가?: 사건 발생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사건 발생 원인 분석은 반성문에서 절대 빠지면 안 되는 내용이다. 무신사는 콘텐츠 검수 과정의 문제점과 직원들의 역사 인식 부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어떤 점이 부족한지 명확하게 분석했다면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무신사는 관련 직원 징계, 콘텐츠 검수자 추가 배치, EBS 최태성 강사 초빙한 역사 강의 실시 등 적극적인 조치 자세로 소비자들에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줄 수 있었다. 발생 원인에 엄중한 잣대를 대지 않는다면 추후 이런 일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으며 상대방에게 절대 사죄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엄격하게 객관적인 자세로 사건 발생 원인을 분석하고 조치를 취한다는 개선 의지를 반드시 어필해야 한다.

출처: Adrian Weinbrecht/Cultura



마치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져야 할 것들이 점점 더 늘어간다 것을 의미한다. 어릴 때는 반성문 종이 한 장이면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책임이라는 무게를 버티는 어른은 반성문 종이 한 장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적극적인 자세와 대처로 상대방이 진정성을 느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옳은 행동만 하고 살 순 없다. 언젠간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그 잘못을 어떻게 대처하고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바꿔 나갈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원문: 김화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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