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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애 아나운서 결혼 발표에 화난 사람들

조회수 2018. 11. 26. 10: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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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봐라, 재벌가에 취집하려고 아나운서 한 것 아니냐!"

조수애 JTBC 아나운서와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의 결혼 발표를 두고 여러 얘기가 나온다. 


기본적으로 누가 누구와 결혼하든 제삼자가 숟가락을 얹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이 대명제에 예외가 적용되는 분들이 있다. 여성 아나운서들이다. 아니 사실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 호감 가는 외모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에게는 항상 높은 확률로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기상캐스터, 항공기 승무원도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마 지상파 남성 아나운서가 재벌가의 여성과 결혼을 했다면 대충 “결혼 잘했네” 수준으로 끝날 이야기들이 성별만 바뀌면 “거 봐라, 재벌가에 취집(취업+시집)하려고 아나운서 한 것 아니냐”의 수준까지 논리가 무제한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 명제에는 기본적인 여성 혐오뿐만 아니라 결국 해당 직업에 대한 평가절하도 포함돼 있다. 

출처: ⓒJTBC
조수애 JTBC 아나운서

그렇다면 여기서 직업에 대한 평가절하가 왜 발생하는가? 이는 기본적으로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이 외모로서 소유되는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 아나운서는 남성 아나운서와 동등한 언론인이 아니라 그저 얼굴마담이라는 유희의 대상으로만 소비돼 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의’ 얼굴마담에서 그들이 벗어난다고 느껴질 때 남성들에게는 이들이 나의 소유물에서 타인의 소유물로 이전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때문에 누군가의 결혼 대상이 겪는 탈모며 사업 실패 경험까지 들먹이며 이를 조롱하는 것은 결국 아이스크림을 빼앗긴 어린아이의 마음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전제부터 틀렸다. 왜냐? 애시당초 그들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었으며 그저 한 명의 언론계 종사자이자 직업인이고 결혼을 하건 말건 독립된 주체로서 자신의 직업을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난이 “돈 많은 사람 꼬시려고 좋은 대학 들어갔다”, “돈 많이 버는 사람 만나려고 좋은 직장 들어갔다”까지 안 닿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과거에 자기가 했던 말을 어겼다고? 결혼 상대방이 돈이 없어도 상관없는 건 그냥 그 사람 결혼관이 그만큼 넓은 거지 언제 돈 많은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는가? 


사람은 사람으로 봐야 한다. 여성 아나운서들은 TV 뉴스에 남성들 즐거우라고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은 주체적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그 이유조차 자신들이 고를 권리가 있으며 또한 그 이유가 결혼이 됐든 무엇이 됐든 주체적으로 직업을 포기할 권리도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남은 악습인 특정 직종은 호감 있는 외모를 가진 젊은 여성만 종사하게끔 만든 남성 중심 사회구조가 문제다. 벗어나자, 제발. 

* 외부 필진 힝고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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