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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욕 화신이던 신혼부부가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유

조회수 2021. 9. 8. 22: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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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을 법정 스님이 보면 화내셨을 거야.”

몇 년 전만 해도 아내와 나는 소유욕의 화신이었다. 소유욕이 많다는 건 집이 좁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첫째 딸이 태어났다. 나는 이 아이를 귀한 곳에서 귀하게 키우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우리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기저귀와 순면 내복, 장난감, 포대기 따위를 한 아름 내려놓자 거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물건 지옥이 시작된 것이다.

2개월, 3개월, 아이가 자랄수록 사야 할 물건이 늘어났다. 젖병, 살균소독기, 분유포트기, 아기띠 등 국민 육아템의 이름을 가진 물품들이 집에 쏟아졌다. 아이가 이불을 자꾸 걷어차면 양쪽에 베개를 두어 눌러주면 될 것을 굳이 ‘요술이불’을 사서 해결했다.

물건으로 부모의 편리함과 아기의 쾌적함을 확보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미친 듯한 소비생활에 균열이 생긴 건 ‘볼풀장’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싸게 잘 샀다고 셀프 칭찬을 하며 이상한 플라스틱공으로 가득한 거실을 보여줬다. 그곳에서 첫째가 플라스틱공을 헤치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쓰레기 바다에서 헤엄치는 새끼 돌고래 한 마리를 환영으로 본 듯했다. 뭔가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건 정말 정신 나간 짓이라는 자각이 퍼뜩 들었다. 도대체 침대를 제외하고 성인 남자가 마땅히 누울 자리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https://brunch.co.kr/@dahyun0421/11

식은땀이 흘렀다.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우리는 쇼핑중독이었다.

조금 더 좋은 옷, 약간 더 편리한 기기를 구하려고 쇼핑몰 할인 시즌을 연구했다. 쿠폰을 모으고, 카드사 청구할인이되는 날짜를 일정표에 적었다. 통장 잔고는 계속 줄었으나, 우리는 합리적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며 진실을 외면했다. 그런데 볼풀장이 자기기만의 위장막을 깨뜨렸다.

아내가 육아휴직 중이었기에 나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특강, 원고 기고, 주말 출장을 기회가 닿는 한 했다. 또 아내는 수십 권의 육아 서적을 섭렵하며 벌이가 허락하는 한 아이에게 좋은 조건을 제공하려 애썼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몸은 지쳐가고, 시간은 부족하고, 공간은 쪼그라들었다.

물건중독 악순환의 삼위일체.


“나에게 며칠만 줘. 싹 치울 테니까.”

https://brunch.co.kr/@dahyun0421/11

독서광인 아내는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부터 열었다. 검색 키워드는 ‘살림’. 100권이 넘는 책 중에서 판매량과 독자 리뷰를 기준으로 다섯 권을 후보로 추렸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2년 뒤 하루 식비 1만 5,000원으로 살게 될 줄은.

“볼썽사나운 볼풀장부터 처분해야겠어!”

아내는 지역 맘카페 중고거래 게시판을 점령했다. 물건을 연달아 거의 공짜 수준에 올렸다. 택배 기사만 찾아오던 우리 집에 중고거래자들이 등장했다. 나눔에 가까운 중고 거래는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볼풀장이 사라지는 데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쓰레기 바다에서 헤엄치던 돌고래는 인간의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인간성을 회복한 아내는 초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개시했다.


“1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은 옷과 물건 다 버리자. 괜찮은 건 팔아버리고.”

무서울 정도였다. 아내는 물건을 버리는 희열(이라 쓰면 혼나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에 빠져 있었다. 팔 물건과 버릴 물건 목록이 나왔다. 쓸만한 건 죄다 ‘중*나라’나 지역맘카페에 올리고 폐기 대상은 50리터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

의류 중에서 애매한 것들은 깨끗하게 세탁해 의류 수거함에 넣었다. 네이버카페 알림창에 거래 성사 댓글 알림이 뜨고, 쓰레기 봉투가 집 밖으로 하나둘 나갈수록 집은 넓어졌다. 볼풀장의 기적이라 봐도 좋았다. 가끔은 충격요법이 통하기도 한다.


특히 가계부는 실질적으로 집의 경제구조를 바꿨다.

지출과 수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자 불필요한 소비가 대번에 드러났다. 우리 집의 경우 홧김에, 기분이 좋아서, 한정판이니까 나간 돈이 전체 지출의 30퍼센트를 차지했다. 믿기지 않는다면, 지난 3개월 간의 신용카드 이용 목록을 꼼꼼히 들여다보길 추천한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상업주의의 능력을 절감할 것이다.

우리는 신용카드를 잘라버렸다. 대신 고전적으로 현금 생활을 선택했다. 현금은 돈 나가는 게 손끝에 느껴진다. 지갑이 가벼워지는 걸 무게로 체감하면 함부로 소비할 수 없다. 스마트폰 요금도 실속형 요금제로 바꿨다. 특별한 날에 먹던 스테이크도 과감히 포기했다. 삭막하다면 삭막해 보이겠지만, 너무 많은 물건과 낭비에 절어있던 우리의 기분은 도리어 상쾌했다.


비우기 실천 1년 만에 방이 한 칸 더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단출하게 사니 돈이 남았고, 그 돈을 적금 계좌에 몽땅 부었다. ‘1+1=2’만큼이나 간단한 수식이다. 이제는 너무 애쓰지 않아도 물건 양을 조절할 수 있다. 심지어 둘째가 태어나 세간살이가 늘어날 법도 한데 공간은 충분하다. 책이 많다 싶으면 책을 나눔하고, 아이들 연령과 맞지 않는 장난감은 이웃에게 건넨다.

비우기와 검소함을 실천하면서 우리는 상품과 광고에 빼앗겼던 소중한 인생을 되찾았다. 왜곡된 소비에 휘둘리지 않고 줏대 있게 산다. 많은 사람이 ‘비우기’와 ‘검소하게 살기’가 우

악스럽다고 억척스럽다고 오해한다. 우리는 결코 부족하거나 쫓기듯 살지 않는다. 삶을 묵직하고 의미 있게 살아내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낼 뿐이다. 우리의 자산은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다. 더불어 삶을 풍성하게 해줄 분야에는 과감하게 지출한다. 진심으로 만족스럽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정도로 살아가느냐’ ‘거지 같다’는 악플을 매주 마주하지만, 우리는 괜찮다. 실제 삶이 괜찮을뿐더러 이런 삶의 방식을 공유하고 싶은 바람마저 있다. 편안하고 좋기 때문이다. 그 길을 많은 사람과 함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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